[신기원 목요칼럼] 탄생의 비밀

기사입력 2019.01.17 07:06 조회수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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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심리학자로 프로이드와 융 그리고 아들러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정신역동이론을 주장하였으며 그 중심에는 프로이드가 있다.  

프로이드와 이들의 관계를 보면 융은 프로이드의  뒤를 이을 황태자로 칭해졌고 프로이드의 영향으로 국제정신분석학회 초대 회장이 되었으나 그의 이론을 비판하며 관계를  단절하였다.  

아들러는 정신분석학자로서 프로이드와 교류하며  비엔나 정신분석학회장까지 맡았으나 인간을 보는 관점에서 프로이드와 이견을 보이면서 강한 적대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융에 의해  분석심리이론이 나오고 아들러에 의해 개인심리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세 학자의 탄생 및 성장과정에서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이드의 어머니는 본인보다 무려  20살이나 많은 남자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  결혼 당시 전처가 낳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본인 또래였다.  모종의 성적인 긴장관계가  추론된다.  실제 프로이드는 성인이  된 후 자신이 이들 간 관계에 대해 가지는 환상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또 프로이드가 세 살 되던 해 두 이복형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간 후 10여 년간 프로이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섯  명의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따라서 프로이드와 어머니  사이에는 여느 모자지간보다 더 강한 심리적 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된  것이다.  한편 프로이드는 비엔나  의대를 졸업한 후 신경과 의사로 활동하면서 히스테리 환자들에게 자신이 고통받는 이유를 자유롭게 말하도록 한 것이 환자증상을 이해하는데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간의 의식 저편에 무의식이 우리를 움직인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인간을 움직이는  대표적인 에너지는 성적인 욕망과 공격적인 욕망이라고 하였다.  

이와 달리 융은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목사였으나 변덕스럽고 짜증을 잘 내는 성격이었고 어머니는 정신질환과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융이  3살 되던 해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융은  어린 시절을 아버지와 함께 보냈다.  여동생이 태어났던  9살까지 융의 유년기는 외롭고  불행하였다.  

이런 경험을 가진 융은 프로이드의 열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엄마에 대해 에로스적 욕망을 담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융의 친가와 외가에는  목사,  의사,  영매 등과 관련된  사람들이 많았다.  융의 조부와 조모 그리고  모친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강하게 믿었고 아버지를 포함한 세 형제는 모두 목사였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융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자신의 꿈을 통해 무의식이 자신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또한 인류조상들의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을 집단무의식이라고 처음 주장한 것이나 집단무의식은 신화,  예술,  꿈.  환상 등에서 발견되는  원형적 이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난해한 주장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의 연장이다.  

아들러는 태어날 때부터 구루병이 있었으며  후두염,  폐렴 등을 앓아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살 때 폐렴에 걸렸을  당시 의사가 부모에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만약 살게 된다면 커서 꼭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결심은 어린 시절의 경험 자체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각하고 활용하는 개인의 주관적 방식과 결정에 따라 삶은 가변적인 수 있다는 것으로 프로이드의  결정론과는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안과의사로 일하면서 그는 시력이 저하된  사람들의 청력이 매우 민감하게 발달하는 것을 발견하고 열등감과 보상이라는 핵심개념을 정립한다.  

의사로 수년간 활동했던 그는 프로이드와  교류하면서 제자가 아니라 동료라고 생각했고 정신분석도 받지 않았다.  이후 그는 프로이드가  성적 욕망에 지나치게 천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갈등을 보였고 끝내 다른 동료들과 함께 학회를 따로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정신역동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새로운 이론을 탄생시켰는데 그 근저에는 학자들의 탄생배경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대현 기자 sbc78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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