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목요칼럼] 한명회와 신숙주

기사입력 2020.12.17 14:39 조회수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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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역사적으로 두 사람을 대비했을 때 비슷한 이미지로 잘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상반된 이미지로 잘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성군이나 폭군들 혹은 충신들이나 간신들을 비교한 것은 전자이고 성군과 폭군 혹은 충신과 간신을 비교한 것은 후자이다. 그렇다면 한 시대를 살다간 한명회와 신숙주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그들만큼 동시대를 잘 살다간 풍운아도 드물다. 그들은 권력과 부 및 명예를 그 시대에서 누릴 만큼 누리다 죽은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르다. 한 사람은 간신의 대명사로 한 사람은 변절자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아왔을까.

 

먼저 한명회의 일생은 드라마틱하였다. 그는 칠삭둥이로 태어났으나 배에는 북두칠성모양의 점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관상이 좋았는지 그의 종조부는 가문을 일으킬 상이라고 예언하였고 젊은 시절 한 노승도 그를 보고 두상에 광채가 있어 필연코 귀할 징조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였고 오랫동안 실의의 나날을 보내며 같은 처지였던 권람과 전국을 떠돌며 주유산천하였다.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이 시절 권람의 소개로 신숙주도 알게 되었고 수양대군도 소개받았다. 이후 수양대군의 책사로 활약하며 거사를 논의하여 계유정난을 일으켰고 세조가 집권한 후에는 두 번이나 영의정을 역임하는 등 최대의 권세를 누렸다. 그는 연속으로 2명의 왕(예종과 성종)의 장인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73세까지 탄탄대로를 달렸으나 죽은 후에는 폐비 윤씨사건과 관련하여 관직을 추탈당하고 부관참시를 당한 후 목이 한양 저자거리에 매달리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정실부인에게서 1남 4녀를 두었는데 차녀는 일찍 청상과부가 되었으며 삼녀(제8대 예종의 비)는 자식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에 사망하였고 사녀(제9대 성종의 비) 역시 자녀 없이 19세에 병으로 사망하여 자식과 관련 박복한 면도 있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생전에는 부와 권력을 누렸지만 죽어서는 치욕을 당한 인물이었다.

 

한편 신숙주는 천재였다. 그는 21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22세에 관직에 나아갔다. 그는 책읽기를 좋아하여 집현전에 근무할 때 매일 장서각에 파묻혀 밤새도록 독서를 하였으며 심지어 남들이 기피하는 궁궐 숙직을 대신해가며 독서를 하였다. 또한 유언으로 저승에 가서 읽을 책 몇 권을 관에 함께 넣어달라고 하였다니 얼마나 독서광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독서력과 타고난 언어적 재능으로 그는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등 동아시아 8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여 일본통으로 활약하기도 하였고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그들과 담론을 나누거나 시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그는 훈민정음 창제과정에서는 음운연구를 위해 성삼문과 함께 요동을 13번이나 다녀오는 등 집념과 성실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친구 겸 사돈이었던 한명회의 추천으로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사은사로 갈 때 서장관으로 동행하여 수양대군과 가까워졌다. 이후 신숙주는 학문을 사랑했던 학자에서 정세판단이 빠른 정치적 인물로 변신하였다. 그는 집현전학자들과 뜻을 달리하여 변절자라고 불렸으나 세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아 나중에 영의정을 지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식과 관련 박복한 면이 있어 8남 1녀 중 장남은 22살에 요절하였고 그가 가장 아낀 차남은 이시애의 난 때 반군에게 잡혀 죽임을 당했으며 사남은 성종의 옥새를 위조하여 남의 재산을 탈취한 사건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다. 그는 나름의 소신으로 국정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인물이었다.

 

 

 

 

한명회와 신숙주는 세조에 의해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수양대군은 왕권을 획득하는데 한명회의 머리를 차용하였지만 왕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숙주의 머리를 활용하였다. 한명회와 신숙주는 친구이자 사돈관계로 수양대군을 만나면서 권세와 영화를 누렸다. 다만 그것이 자식 대에까지 그대로 전승되지는 않았다. 그들의 유한한 삶을 보면서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sbc서산방송 기자 sbc78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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