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목요칼럼]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

기사입력 2021.06.17 07:56 조회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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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원(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나는 동물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물론 병아리나 새, 물고기를 키우지 않았다. 자폐아인 막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지금부터 이십여년전 아는 분이 막내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며 수족관을 선물해서 물고기를 잠깐 키운 것이 유일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친구들 집을 방문하고 나면 꼭 이런 저런 종류의 애완동물을 키워보자고 무던 졸랐지만 나와 아내는 언제나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필자의 경우 부모님이 미곡상을 하셔서 작전상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예전에는 쥐들이 많았고 쌀을 대개 가마니에 넣어서 보관하다보니 쥐들이 쉽게 구멍을 내서 쌀이 가마니에서 흘러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쥐들과의 전쟁에서 고양이는 필수품이었다. 그러고보니 포식한 고양이의 살찐 모습과 새끼고양이들을 거느리고 다니던 어미고양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 한번은 갓 태어난 고양이를 안고있다가 쥐가 나타나서 고양이에게 보여주니 이를 본 쥐와 새끼고양이가 둘 다 놀래서 도망치는 희한한 경우도 봤었다. 그랬던 새끼고양이도 얼마 안가 쥐들의 공포대상이 되었다.

 

가끔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아침나절 산책 삼아 동네를 돌고 있다.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돌고 오면 1시간 남짓 걸린다. 그런데 며칠 전 개 때문에 공포를 느껴 산책을 계속하여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사정은 이렇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10여 미터 앞에서 큰 개가 숨소리를 가쁘게 내면서 내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오고 있었다.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쓴 내 모습이 개의 관심을 끈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개의 가쁜 숨소리에 긴장이 되었다. 또 비교적 큰 몸집도 나를 쫄게 만들었다. 나는 방어할 무기가 아무 것도 없었다. 개 주인이 “이리 와”라고 소리를 질렀는데도 금방 말을 듣지 않았다. 사납게 생긴 큰 개를 눈앞에 두고 무심하게 걷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개는 주인에게로 갔다. 개 옆을 지나는데 땀이 물 흐르듯 하였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개 주인에게 욕을 퍼붓고 이단옆차기를 날리고 싶었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게 사람 살아가는 도리이다. 본인은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 똑같지는 않다. 내가 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 동물을 사랑해줄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가끔 호수공원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작은 강아지에게 온갖 예쁜 장식을 해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정말 귀엽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배변에 대한 대처를 하지 않아서 주위의 눈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저만 좋다는 이기적인 행동이다. 아니 몰상식한 것이다.

 

어느 소방관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한번은 “애가 화장실에 빠졌어요”라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고 출동해서 가봤더니 재래식 화장실에 강아지가 빠져있었다. 화가 나서 ‘왜 거짓말을 했냐’고 했더니 나이든 부부가 강아지를 가리키며 진지한 표정으로 “저 강아지가 우리 집에서는 애여요”라고 하였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절박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져 결국 똥통으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나중에 보니 그 집에는 진짜 자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느 교수는 늦둥이 때문에 개를 키우는데 개 이빨 교정비용으로 수 십 만원이 들어갔다며 개 키우는 비용이 애 키우는 비용과 똑같다고 하였다. 강의 나오는 어느 교수는 텅 빈 집에 쓸쓸하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자기 발자국소리를 듣고 짖어 주는 개라도 한 마리 있어야 노년에 덜 외롭다고 하였다.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이 인간위주이고 동물을 오직 수단으로 삼는 것 같다고 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란 의미의 반려동물로 바뀌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그 의미를 실감할 수 있도록 기본을 지켜야 할 것이다.

[sbc서산방송 기자 sbc78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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